5세때 화서 이항로 문하에 들어가 천자문과 동몽선습을 배우고, 12세때 부터는 중암 김평묵 문하로 옮기어 사서삼경을 배워 통달하였다.21세때 이항로의 명을 받고 송원화 동사합편강목(宋元華 東史合編綱目)을 수정했으며 56세때 학행으로 선공감역에 임명되였으나 취임하지는 않았다.
1881년 척사위정의 소론이 일어나자 그는 은사인 김평묵과 함께 구법보수(舊法保守)와 척양척왜(斥洋斥倭)를 열렬히 주장했다. 그 후 사헌부 지평(持平)에 제수(除授)되였으나 응하지 않고, 설악산으로 들어가 나오지 않았다.
1893년 향년 73세에 별세하고 대제학으로 추증되였으며 고산의 삼현 서원·가 평의 미원서원(설악면)에 배향되고 시호는 문간(文簡)이라 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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