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례원 판결사 신경열 등록일 : 2010-07-13작성자 : 관리자

신경열(申景說)의 자는 열지(悅之)요 본관은 평산(平山)이며 시조는 고려태사 신숭겸의 22세손이고, 호조판서를 지내고 사간(思簡)이란 시호를 받은 호(浩)가 그의 파조(派祖)이다.

그는 1572년(선조 5) 양근 단월면에서 효자로 이름났던 신세의의 장남으로 태어났는데 어려서부터 어질고 인자하여 향리인(鄕里人)이 모두 장차 뛰어난 인재가 되리라 칭송하였다.

그는 1591년(선조 24) 19세시에 북청이씨 이흥업의 딸과 혼인한 후 가평읍 달전리로 이거하니 곧 평산신씨(思簡公派)의 가평 개기선조(開基先祖)라 이른다.1596년(선조 29)에 진사시에 합격하여 사관의 길로 들어가 요직을 두루거치고 진용교위가 되었다가 다시 장례원 판결사로 승진되었다.

그는 관직에 있으면서 몸소 예의범절을 주장하여 和樂을 본분으로 삼아 선대의 유훈대로 향당에 은의를 베푸니 모두 그의 덕을 찬양했다고 한다. 슬하에 보천·요천·순 천등 세 아들을 두었고 두 딸은 유업증과 이충입에게 각각 출가시켰다.

그가 1644년(인조 22) 향년 72세에 영면하니 조정에서 통정대부 예조참의로 추증시켰으며, 묘는 가 평읍 달전리 속청 산수골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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