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나 16세경에 그 높은 이름을 들은 선배들이 추천하여 여러번이나 과거 에 응시하였지만 과장에 들지 못하여 많은 이들이 애석하다 하였다. 그는 실망하지 않고 학문에 전념하여 드디어 1651년(효종 2)에 비로서 문과에 급제하였으며, 괴원(槐院)에 들었다가 6품으로 승진하고, 1659년(효종 10)에 월과제에 세번이나 장원하여 통정대부로 승진하고 이어 가선대부가 되었다가 다시 자헌대부·정헌대부가 되었다.
그가 역임한 벼슬은 다양한데 說書·사서·보덕·수찬· 교리·직강·대사성·양관대제학·대사 련·도승지·예조참판·병조·이조로 옮겼다가 한성부윤·안변부사·여주목사등도 제수된 바 있지만 불 취(不就)하기도 했다. 1674년(현종 15) 7월 2일에 별세하니 향년이 57세였다.
묘는 가평군 하면 현리 안곡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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