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63년(영조 39) 진사시에 합격하고 음보로 호조좌랑에 승진하였다.1771년(영조 47) 정시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여 교리·승지·대사간을 거치고, 1780년(정조 4) 동래부사가 되었다가 이듬해 경상도 관찰사·대사성·공조판서를 역임하였다.
1787년(정조 11) 지경연사·선혜청 제조를 거쳐 이조판서에 특진되었으나 한덕후를 잘못 추천한 죄로 숙천에 유배되었다가 풀려나 다시 형조·병조·이조의 판서를 역임하고 판의금부사가 되어 함경도 관찰사가 되었다가 돌아와 다시 예조·이조판서를 지냈다.
1794년(정조 18) 7월 20일 55세에 별세하고, 후에 영의정에 추증되고 시호를 익헌이라 내렸다.부인 청송심씨와의 사이에 5남4녀를 낳았고, 묘는 가평군 상면 연하리 반계동 뒷산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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