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늘도 감동한 효자 장원한등록일 : 2010-07-13작성자 : 관리자

장원한(張遠翰)의 자는 만리(萬里)이며, 본관(本貫)은 인동(仁同)이다.인조 23년(1645년)에 가평군 가평읍 복장리에서 출생하였으며 어려서부터 어질고 효성스러워 어른을 공경(恭敬)하는 것이 재법 어른 같았고, 그는 나이 열두살때에 아버지의 병환(病患)이 위중(危重)하자 낮과 밤으로 통곡(慟哭)하면서 아버지대신 죽기를 기원(祈願)하였다.
변(便)을 맛보아 달고 씀에 따라병세(病勢)의 경중(輕重)을 징험(徵驗)도 하였고, 상(喪)을 당해서는 상복(喪服)을 벗지 아니하고 3년을 묘소옆에 움막을 짓고 매일같이 호읍(號泣)하여, 이웃 사람들도 모두 슬퍼하였다.
집안이 너무 가난하여 밥(끼니)을 먹기 어려웠으며 편모(흘어머니)를 봉양(奉養)하는데 힘을 다하여 밥상에 한끼라도 고기반찬(飯饌)이 없으면 밤잠을 이루지 못하였다고 한다.
어느 날 산에 들어가서 山매가 까치를 휘몰아 잡는 것을 보고 그 매를 잡아 집에서 길을 들여 키워서 매일 꿩 세마리씩을 잡아서 반찬(飯饌)을 해 올리되 부엌에 들어가 스스로 요리하며 다른 사람에게 대신시키지 아니하였다.
어느날 이웃에서 손님이 와 그 꿩을 손님 반찬(飯饌)에 쓰고 대신 닭을 잡아 드리려고 닭장에 가보니 수꿩(쟁끼) 여러마리가 닭속에 끼어 있었다.마을 사람들이 모두 경탄(驚歎)하며 얼음을 깨고 잉어를 잡는 것과, 막(幕)을 치고 참새를 잡아다가 봉양(奉養)하던 일에 비교(比較)하였다. 어머니 병환이 위독(危篤)해지자 애통(哀痛)해서 하늘에 기원(祈願)하며, 손가락을 잘라 피를 내어 어머니 입에 대어 드리니 회생(回生)하여 1年을 더 살았다.영조 17연(1741)에 임상원 어사(林象遠 御史)가 장계(狀啓)로 상달(上達)하여 2품(品)의 작(爵)을 하사(下賜)받고 다시 1결의 땅과 호세(戶稅)와 민역(民役)의 면제(免除)를 받으니 영예(滎譽)가 3세에 미쳤다.
그는 일찌기 벼슬을 사양하고 90歲까지 건강하였으며 제사(祭祀)는 반드시 제물(祭物)을 다 갖추었으며 곡(哭)할 때에는 반드시 슬픔을 다하여 죽도록 변경하지 아니하였다.
1743년(영조 19)에 작고(作故)하니 수(壽)는 98세였다. 막내 아들 세화(世華)는 그 어머니 병환 (病患)이 위중(危重)할 때 손가락을 잘라 피를 어머니 입에 대어 드려 3년을 더 살게 하였고 증손운중 (曾孫亢中)도 손가락을 찢어서그 피로 어머니를 구원(救援)하여 하루를 더 살았고, 지명은 손가락을 찢 어서 아버지의 명을 나흘동안 연장시켰으며 현손 현민(玄孫, 鉉旻)은 어머니 병환을 8년이나 간호하는 동안 하루도 게을리 하지 않았으며, 손가락의 피로 어머니를 구원(救援)하여 하루를 더 살았고, 현석은 손가락의 피로 어머니를 구원(救援)하여 닷새를 더 살게 하였으니 모두 효도로서 가법(家法)을 삼아 근 원(根源)이 깨끗하면 흐르는 물도 깨끗하듯이 한 집안에 여덟 효자(孝子)가 났다.
[문화체육과 문화예술팀 031)580-206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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